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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혼다의 꿈

□■◆◇ 2021. 3. 4. 20:50

 

1914년 어느 날, 일본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이치로라는 어린 소년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뭉게뭉게 퍼지는 흙먼지 구름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레진 여덟 살 소년은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를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T형 포드 자동차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자동차회사 사장이 된 혼다 소이치로는 어린 시절에 느낀 감동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자동차는 매연을 내뿜고 있었지만 저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매연 냄새를 맡았습니다. 저에게는 향수 냄새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성인이 된 소이치로 앞에 펼쳐진 인생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시멘트 공장을 경영하다가 두 번이나 파산했고, 가솔린 깡통을 모아 재기를 꿈꾸었으나 갑작스런 지진으로 또다시 무너졌다. 그러다가 1946년 9월, 우연히 친구 집을 찾아갔다가 근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작은 엔진을 발견했다. 그것은 전에 미군이 사용하던 무선 라디오의 소형 엔진이었다. 소이치로는 그것을 보자마자 완전히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이치로는 당장 엔진이 달린 자전거 모형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먼저 일본식 온수통을 가져다가 연료 탱크로 이용하고 주워온 엔진을 자전거 앞쪽에 부착했다. 하지만 앞쪽 타이어에 큰 파열이 생기고 말았다. 다시 V형 동력 전달 벨트가 뒷바퀴를 끄는 방식인 평범한 엔진 설계를 이용해 새로운 모형을 만들었다.

 

좀 더 진보한 모형을 소이치로 다음으로 시운전한 사람 은 여성이었다. 소이치로는 아내 사치에게 자신이 만든 모형을 한번 타보라고 부탁했다. 사치의 말에 따르면 소이치로가 자신이 만든 기계를 집으로 가져와서는 새로 만들었으니 한번 타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치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남편은 제가 장보러 나갈 때마다 너무 힘들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 기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둘러댄 소리였죠. 그래도 아주 없는 생각을 꾸며낸 말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분명히 남편은 여자가 그런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아닌지 알고 싶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전 실험 대상이었던 셈이죠. 남편은 저더러 사람들로 혼잡한 시내 중심가를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몸뻬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습니다.”

 

시운전을 하고 나서 사치는 남편에게 따질 일이 한 가지 생겼다. 실험 대상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전거 성능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사치는 이렇게 설명했다.

 

“꽤 오랫동안 시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제가 좋아하는 바지에 온통 기름이 튀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죠. 좋지 않다고요. 고객들이 이걸 타고 나면 다시 와서 호통을 쳐 댈 거라고요. 그럴 경우 보통 남편은 진정하라고, 호들갑 좀 떨지 말라고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아마 그럴 거라며 수긍하는 자세였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고분고분하더라고요."

 

 

소이치로가 그렇게 고분고분했던 이유는 이미 자신도 그런 문제를 알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이치로는 옷에 그렇게 기름이 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는 연료 일부가 기화기를 통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엔진을 전부 분해해서 부속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살핀 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화기로 교체한 다음 다시 엔진을 조립했다. 그리고 나서 판매에 들어가기 전 최종 시운전으로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이런 과정은 오늘날 차량 출고 후에 실시하는 납품검사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이치로의 아내가 한 말처럼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다시 와서 호통을 치는 일이 없도록 품질을 보증하는 단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