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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항공의 재도약

★○☆● 2021. 4. 2. 22:57

1970년대 영국에는 국제노선을 취항하는 국영 항공사 두 곳과 국내 노선을 취항하는 항공사 두 곳을 포함해 네 개의 항공 사가 있었다. 그러다가 1974년 3월 31일 네 회사를 합병해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라는 거대 항공사가 탄생했다.

 

하지만 완전히 정부 소유가 되어 모든 과정을 정부가 주도하게 된 영국항공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기능을 상실한 채 점차 행동은 굼뜨고 몸집은 비대한 공룡 조직으로 변해 갔다. 합병 이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영국항공은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비생산적이고 거대한 노동 인력과 대규모 손실만 초래하는 방만한 경영으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공공기관은 점점 더 폐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영국에 나돌던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었다. “BA의 진짜 뜻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대답은 “아주 끔찍한 BloodyAwful”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정부는 영국항공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한 뒤, 당시 보일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영국 기업인 밥콕 인터내셔널의 존 킹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킹이 첫 번째로 시도한 대대적인 보수 작업은 사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구조조정이었다. 킹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난 영국항공의 인력을 5만 9,000명에서 3만 6,000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인원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퇴직수당을 후하게 지급했다. 퇴직금 재원은 잉여 항공기와 런던 지역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일부를 매각해서 충당했다.

 

다음으로는 오래 거래하던 사업체 두 곳을 정리했다. 그는 지난 60년 동안 영국항공의 보험 업무를 대리하던 보험회사였고, 다른 하나는 36년 동안 거래하던 광고대행사였다. 그러고는 광고 홍보 업무를 영국의 유명 광고회사인 사치&사치에 일임했다.

 

세 번째 개혁 대상은 영국항공의 이사회였다. 킹은 당시 이사회를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집단으로 간주했다. 이사회는 경제학자와 노조 지도부, 다른 국영기업 대표와 전 재무부 관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킹은 이사회의 구성원 다수를 교체하고 전 바클레이즈 은행장, 당시 캐드베리 스윕스 이사, 장차 유니레버 대표가 될 사람을 포함해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고경영자 역할을 누가 담당하느냐는 문제가 남았다. 킹은 그 역할을 항공 전문가에게 위임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서비스에 대한 이해력을 갖춘 사람을 찾고 있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경영을 책임질 사람이 해당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과다하면 기업에게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 도 잘 모르고 추진한 일이 많이 알고 결정한 일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사람이 영국항공의 CEO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마침내 1983년 초, 영국항공의 CEO로 당시 시어스 홀딩의 부사장인 콜린 마셜이 임명되었다. 마셜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처음으로 영국항공에 출근했을 때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도무지 아무 의욕이 없어 보였습니다. 수많은 동료가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직원들에게는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마셜은 BA를 새로운 BA로 바꾸는 작업에 돌입했다. 즉, 아주 끔찍한 'Bloody Awful' 기업에서 ‘최고로 멋진 Bloody Awesome' 기업으로 변모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먼저 발권 담당 직원과 지상 근무자, 승무원, 심지어 수하물 담당자를 위한 유니폼 디자인을 새롭고 참신하게 바꾸었다. 남성 직원의 의복이 바뀐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런 다음 항공기에 독특한 모양의 줄무늬를 새롭게 칠하고 '서비스를 실천하는 항공사'라는 의미로 'To Fly, ToService'라는 기업 모토가 새겨진 회사 문장을 그려 넣었다.

 

하지만 마셜은 기업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슬로건을 외친다 하더라도 기업 문화가 함께 변화하지 못한다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직원이 '승객을 최우선으로'라는 주제로 이틀간 워크숍에 모든 직원이 참석하도록 했다. 그 외에도 자주 진행되는 워크숍을 열어 모든 직원이 고객의 입장에 서보는 기회를 가지도록 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직원이 버릇없이 음식을 놓고 가버릴 때에 그런 접대를 받는 기분이 어떨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식이었다.

 

바람직한 서비스를 수행하는 또 한 가지 노하우는 세세한 사항까지 꼼꼼하게 신경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실시한 시장조사에 따르면 승객들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권 담당 직원이 “행복한 비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루리 씨”라는 식으로 습관처럼 승객 이름을 불러준다면 고객 만족도는 6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이런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 역시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힐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비즈니스 클래스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일 이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주요 공항에 있는 라운지를 재단장하고 기내 비즈니스클래스 객실에 조절 가능한 머리 받침대가 달린 좌석을 배치했다. 또한 기내 음식의 질을 높이고 클럽 월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홍보 작업에 좀 더 많은 힘을 들였다.

 

한편 런던 히드로 공항에는 특별히 문제를 해결하고 다니는 '사냥꾼'을 배치했는데, 이들은 누구에게든지 말을 많이 걸면서 지원이 필요하거나 어리둥절한 승객을 찾아 공항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