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뒤 영국군이 점령한 볼프스부르크라는 도시에는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공장이 하나 있었다. 공장 지하에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폐기된 자동차 부품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전기 전자 기술자 부대를 지휘하는 영국군 찰스 래드클리프 대령과 이반 허스트 소령은 우연히 이 쓸모없어 보이는 자동차 잔해들을 발견했다. 만약 그들이 소용 가치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적지 않은 자동차 자재들은 영원히 고철 더미로 남았을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놓친 중요한 자산을 알아보고 활용했다. 즉, 이 공장의 시설과 자재가 단기적으로는 당장 차량 확보가 시급한 영국군을 위해 저비용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패전국 독일이 회생할 수 있는 자립 기반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공장에 남아 있던 자재들은 다름 아닌 폭스바겐 비틀을 생산하던 부품이었다. 1933년에 히틀러가 정치적 기반을 다 질 목적으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에게 튼튼하고 저렴하며 연비가 좋은 '국민차(폭스바겐이라고 알려진 브랜드의 뜻은 독일어로 '국민의 차 Volks wagen’이다)'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후, 비틀은 1938년에 볼프스부르크의 공장 기공식에서 첫 모델이 공개되면서 수천 대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폭스바겐 공장은 군수공장으로 바뀌었고, '히틀러의 경제 기적'을 이루려던 국민차는 생산이 중단된 채 그동안 생산된 자동차마저 모두 군수물자로 이용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 외관상으로 보아도 공장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지만 허스트 소령은 둘러보자마자 공장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발전 설비가 있는 건물에서 파편과 잔해를 치우고 보니 일부 잔해는 공격을 받기 전까지 가동된 흔적을 위장하려는 듯 그곳에 덮여 있었다. 게다가 부품의 상태와 모양으로 판단하건대 여러모로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국민차를 제작할 수 있는 애초의 청사진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모두 파괴되어 사라진 상황에서 허스트 소령과 래드 클리프 대령은 남아 있는 부품들로 국민차를 복원하기 위해 애썼다. 두 사람은 커다란 종이 두 장에 기술 도안을 새롭게 그리고 각각 18가지로 구역을 나눠서 부품과 사양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될 차량이 재탄생되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런 다음 허스트 소령은 영국군에 차량 2만 대를 주문하도록 설득해서 1946년부터 생산이 재개되었다. 정식 이름은 T형 포드를 약간 변경해 타입 1 비틀'로 정했다. 전쟁 직후라 원자재가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강철과 유리, 타이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식량 또한 공급 부족에 시달렸으므로 공장 노동자들의 영양실조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공장 옆 잔디밭에는 채소를 심어 식량을 조달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946년 3월, 드디어 비틀 1,000대가 생산되었다.
1949년 5월, 폭스바겐 자동차 회사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군이 폭스바겐 공장 운영을 독일 정부에 양도해 BMW의 기술자 출신이자 독일 자동차 오펠(Opel)의 임원이었던 하인리히 노르트호프가 새 경영자로 취임했다. 그때부터 폭스바겐은 정상궤도에 올라섰고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품질과 성능을 향상해 타입 1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독일에서는 서민의 발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저렴하고도 튼튼한 차량으로 사랑을 받았다.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1955년에는 100만 대 생산을 넘어섰고 덕분에 폭스바겐과 독일 경제는 되살아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뛰어난 광고 덕분에 주목을 받으며 1960년대에는 연간 20만 대 이상이 팔려 나갔다. 그리고 2003년 7월을 끝으로 1세대 비틀의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총 2,000만 대가 넘게 제작되었다.
허스트 소령은 1951년 말 군에서 제대하고 영국으로 돌아가 민간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2000년 3월 10일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 근처에는 독일 재건을 위해 애쓴 소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반 허스트를 본떠 이름을 지은 거리가 지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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