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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지하철이 최악에서 최고가 된 작은 비밀

★○☆● 2021. 3. 1. 14:14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1863년 1월 9일에 개통되었다. 이 지하철은 런던의 패딩턴역에서 패링턴스트리트역까지 총 6킬 로미터를 달렸다. 오늘날에는 11개 노선에 250개가 넘는 지하역으로 규모가 커졌지만 당시에 튜브라고 불린 이 지하철은 세계 최초라는 기록이 무색할 정도로 꽤 오랫동안 평판이 좋지 못했다.

 

열차는 빽빽하게 사람들로 가득 찼고 지하철역은 지저분했으며 승객들이 아무리 잘 봐준다 해도 파업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북쪽 노선은 '고통의 구간' 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상태가 최악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호전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세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 계기는 1987년에 발생한 킹스크로스역 폭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승객이 31명이나 사망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에 대한 우려와 공포심이 번졌다. 수년 동안 지하철운영에 투자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보고와 지적도 빗발쳤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투자와 적극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의석을 다수 확보 하게 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노동당 집권 후 노동당의 압력과 함께 사회적 여건이 무르익으면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정부와 민간 합작을 통해 지하철 사업 지원에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것이다.

 

세번째는 런던 시장 당선을 겨냥한 정치적 투쟁에서 튜브가 선거 공략의 중요한 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사실 그때까지는 전국적으로 각 지역의 지하철이 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교통 문제는 이제 런던 시장이 중책을 담당해야 할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 하는 시민의 발이 되었으므로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 모든 요인이 작용한 덕분에 지하철 사업이 개선되고 가시적인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 그 결과 1982년에는 하루 2만 명 미만이던 지하철 이용자 수가 2002년경에는 3만 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그 밖에도 빅토리아선과 메트로폴리탄선의 환경이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영국식 교통카드인 새로운 전자인식 오이스터 카드가 도입되어 요금 체계와 출입 방식이 쉽고 빠르게 개선되었고, 지하철 역사가 깨끗하게 재단장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가 개선되었음에도 승객 만족도는 여전히 저조했고 웬일인지 이용자의 반응이나 인식도 기대보다 부정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네 번째 요인이 작동하면서부터였다. 그것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안내방송 전략이었는데, 승객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츰차츰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오랫동안 지하철 안에서 들을 수 있었던 안내방송은 두가지 종류에 불과했다. 하나는 다음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음 역은 어디입니다' '이 열차는 어디 방향입니다'라는식의 정류장과 방향을 알려주는 방송이거나 출입문에 기대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 이가까이 다가가 있지 마십시오’ 열차와 정류장 간격이 벌어져 있으니 내릴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의 안전에 유의하라는 방송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 지하철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공유하는 안내방송이었다. 예를 들면 “빅토리아선이 심하게 지체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열차가 지연되기 쉬우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 점검으로 인해 순환선 열차의 운행이 중단될 예정입니다” “현재 핀칠리로드역이 폐쇄되어 있습니다” “기관사 부족으로 8시 36분 도착 예정 열차가 취소되었습니” 등 모두 좋지 못한 소식을 알리는 방송들이었다.


이러한 메시지들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은 런던 지하철 담당 컨설턴트였다. 물론 지하철에서 이런 안내방송을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객서비스에서 최고로 신경 써야 할 사항은 사업체가 문제를 인정하고 고객과 함께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당시 지하철 안내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으로 상쇄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대해 컨설턴트가 제시한 해결책은 매우 신선했다. '무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컨설턴트는 전달할 사항이 특별히 없을 때에도, 문제없이 운행되고 있을 때에도, 정기적으로 안내방송을 내보내자고 주장했다.

 

 

무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라고 해봤자 특별할 것 없이 그저 현재 상황, 즉 아무런 문제없이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알려주면 된다. 예를 들면 “런던 지하철 모든 노선에 대해 정기적으로 점검과 수리를 진행하고 있으니 승객 여러분은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라는 식의 우수한 서비스를 홍보하는 방송도 좋다. 런던 지하철의 경우 무소식만 한 희소식은 없을 것이며 승객들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늘날 런던 지하철은 연간 10억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리고 승객들은 전 지하철 네트워크를 통해 정기적으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몇 가지 문제를 알리는 방송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소식을 알리는 안심 방송이다. 그리고 2009년경에는 지하철에서 몇 가지 좋은 소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만족도가 79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향상 되었으며, 런던 튜브가 파리와 마드리드, 베를린, 코펜하겐과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최고의 지하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소식이지만 잘 운행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 런던 지하철의 신뢰도가 올라간 이야기에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