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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는 왜 감옥에서 펭귄을 그렸을까?

□■◆◇ 2021. 3. 2. 22:24

 

1987년, 영국 성공회 대주교인 테리 웨이트가 시아파 무슬 림 단체에 납치당했다. 웨이트 주교는 당시 서방 세계에서 탁월한 협상 중재자로 알려져 있던 인물로, 납치되기에 앞서 리비아에 억류된 서방 인질 10명을 석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실 납치되던 날도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자신이 구하고자 했던 인질들과 함께 레바논에 억류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발생하자마자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그날부터 테리 웨이트는 4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독방에 눈가리개를 하고 라디에이터에 묶인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자주 두들겨 맞았고 참수해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천식으로 고생도 많았다. 이동할 때는 거대한 냉동차에 실리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던 감시 요원들은 점차 테리 웨이트의 행동과 인품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심적으로 그를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몇 달을 갇혀 지내던 어느 날, 그와 친해진 한 감시요원이 책을 한 권 구해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평소 책을 무척 좋아하던 테리 웨이트는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것을 갖다 달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인데, 특정한 책을 요청한다 해도 감시요원이 이해할 수 있을까? 역사나 철학, 문학, 신학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어떻게 몸짓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뜻을 이해한다 해도 그 책을 찾아서 가져와줄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는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테리 웨이트는 어떤 책을 가져다 달라고 할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책 귀퉁이에 새가 그려진 책이면 아무거나 좋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새가 무엇인지 감시요원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검은색과 흰
색으로 된 새, 펭귄을 그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펭귄출판사의 심벌이었다.


1991년 웨이트 주교는 약 5년 정도 지난 1,763일 만에 레바논에서 석방되었다. 그동안 테리 웨이트는 레바논 감시 요원들이 간혹 전해주는 펭귄출판사의 책을 읽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풀려난 뒤에 누군가 그 에피소드를 듣고 무슨 의미였는지 물었다. 주교는 펭귄출판사에서 출간한 거라면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 읽을 만하리라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좋은 책을 읽고 싶다면 펭귄 책을 골라라, 테리 웨이트의 이 지적이며 극적인 에피소드는 펭귄출판사의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